[NC전시관] 흰색 뒤에 남은 떨림… 이강욱의 ‘가장 고요하게 빛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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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완 기자 
작가 이강욱 전시 작품. 사진=페이토갤러리
출처 : 뉴스컬처(https://www.nc.press)
초기 ‘장소-선’부터 ‘흰 몸짓’까지... 층을 쌓고 비워낸 화업 집대성
쌀알 모티프와 신체 파동의 결합... 9일까지 중구 페이토갤러리 개최


[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이강욱의 그림은 아주 작은 데서 출발한다. 한 점, 가느다란 선, 세포를 닮은 미세한 흔적이 화면을 메운다. 시선은 금세 먼 곳으로 간다. 작은 단위들이 서로 닿고 갈라지고 울린다. 화면 전체를 넓은 질서 쪽으로 끌어간다. 눈에 바로 잡히지 않는 생명의 떨림, 말로 다 적기 어려운 관계의 움직임, 잠깐 스쳤다가 사라지는 시간의 감각을 회화 안에 붙들어 왔다.

그의 작업 앞에서는 형상을 읽기보다 리듬을 듣게 된다. 화면은 조용한데 안쪽은 비어 있지 않다. 선과 층, 번짐과 지움이 오래 겹친 자리에는 미세한 진동이 남는다. 표면은 차분하지만 안쪽에서는 수많은 단위가 서로 반응한다. 이강욱의 그림이 오래 시선을 붙잡는 까닭이다.
작가가 오래 밀어 온 생각도 분명하다. 작은 것 안에 넓은 세계가 들어 있다는 감각이다. 윌리엄 블레이크가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본다”고 적은 문장이나, 라이프니츠가 가장 작은 단위 안에도 하나의 세계가 있다고 본 생각은 이강욱의 화면과 멀지 않다. 다만 사유를 문장에 두지 않았다. 세포 같은 미시의 단위와 우주라는 거대한 질서를 한 캔버스 안에 맞붙여 자기 식의 회화 문법을 세웠다.
초기작인 보이지 않는 장소-선(Invisible Space-Line) 연작부터 방향은 뚜렷하다. 화면을 촘촘히 가르는 선은 장식이 아니다. 각각의 선은 미세한 존재들이 서로 스치고 엮이는 자국을 만든다. 화면을 가득 메운 선들은 멈춘 구조보다 살아 움직이는 조직에 가깝다. 작가는 보이지 않는 생명의 맥박을 천천히 끌어올린다.
이후 보이지 않는 장소(Invisible Space) 연작에 이르면 언어는 정리된다. 이른바 ‘쌀알’ 모티프가 화면 전반에 놓인다. 각각의 작은 단위는 따로 떠 있는 듯하면서도 끝내 하나의 호흡 안에서 이어진다. 흩어진 점이 아니라 서로 울리는 개체들이다. 이강욱은 미세한 반응을 과장하지 않는다. 화면 전체에 번지는 떨림만 남긴다. 
몸짓(Gesture) 연작은 다른 얼굴을 꺼낸다. 앞선 시기 작업이 미세한 질서와 관계의 망에 더 가까웠다면, 이 시기에는 작가의 몸이 남긴 자국이 앞에 선다. 붓질의 속도, 밀고 당긴 흔적, 겹치고 번진 자국이 살아난다. 세포가 갈라지고 싹이 트는 듯한 파동도 짙어진다. 화면은 더는 조용한 구조에 머물지 않는다. 축적된 시간과 신체의 리듬이 한꺼번에 밀려 나온다.
최근작 흰 몸짓(White Gesture) 연작에 닿으면 이강욱의 회화는 다시 깊이를 바꾼다. 쌓인 색의 층 위에 흰색이 다시 올라간다. 덮고 가리고 누르는 과정이 이어진다. 묘하게도 그럴수록 화면 안쪽의 울림은 길어진다. 앞에 놓인 형상은 줄어드는데 안에 남은 떨림은 커진다. 적게 남긴 자리가 더 깊게 읽히는 순간을 붙든다.
이강욱의 그림은 한 번에 결론이 나지 않는다. 멀리서 보면 차분한 추상회화처럼 읽힌다. 가까이 다가가면 덧칠한 자리와 지운 자리, 아래층에 남은 색과 선, 잠깐 비쳤다가 사라지는 흔적이 차례로 살아난다. 완성된 결과 하나만 보는 일이 아니다. 결과에 닿기까지 쌓인 시간이 같이 읽힌다. 평면 위에 층을 쌓고 다시 덜어내는 느린 반복 속에서 회화를 깊게 밀어 왔다.
그렇다고 무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치밀하게 짜인 자국은 화면 안에 넓은 숨을 만든다. 작은 단위가 촘촘히 얽혀 있는데도 답답하지 않다. 화면은 닫히지 않고 안쪽으로 계속 열린다. 그래서 이강욱의 작업 앞에서는 시선을 오래 두게 된다. 바로 이해되는 대신 천천히 스며든다.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와는 다른 속도다.
이강욱의 화업은 선에서 층으로, 질서에서 파동으로, 밀도 높은 색에서 흰색의 수렴 쪽으로 옮겨 왔다고 말할 수 있다. 어느 시기든 바뀌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끝까지 화면 안에 붙들겠다는 태도다. 미세한 구조와 거대한 질서, 생성과 소멸, 몸의 흔적과 침묵의 깊이를 한 자리에 놓겠다는 고집이다.
전시 ‘가장 고요하게 빛나는(Gleaming in Serenity)’는 그 오랜 길을 한눈에 짚는 자리다. 초기 보이지 않는 장소-선(Invisible Space-Line) 연작부터 최근 흰 몸짓(White Gesture) 연작까지 이강욱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선명하게 읽힌다. 선적 질서가 화면을 지배하던 시기, 미세한 개체들이 호흡을 이루던 시기, 신체의 리듬이 밀려 나오던 시기, 흰색이 깊은 울림을 남기던 시기가 한 줄로 이어진다.


이강욱은 1976년 울산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동대학원을 마쳤다. 국립현대미술관 창동스튜디오 입주작가를 거친 뒤 영국 첼시 칼리지 오브 아트 앤드 디자인(Chelsea College of Art and Design)에서 석사, 이스트런던대학교(University of East London)에서 박사를 마쳤다. 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1년 대한민국회화대전 대상, 2002년 중앙미술대전 대상과 동아미술상, 2003년 송은미술대상전 지원상을 받았다. 2002년부터 2025년까지 국내외 개인전 35회, 기획초대전 400여 회에 참여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호암미술관 등 여러 기관에 소장돼 있다.


‘가장 고요하게 빛나는(Gleaming in Serenity)' 전시는 내달 9일까지 서울 중구에 위치한 페이토갤러리에서 열린다. 


APRIL 1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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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