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이가진, 하태임 3인전 《곡선의 미학 The Aesthetics of Curves》


컬처램프
류은 에디터
곡선이 지닌 조형적 가능성과 그 이면에 숨겨진 미학적 가치를 탐색 하는 김민석, 이가진, 하태임 작가의 작업을 한자리에 모은 페이토갤러리의 《곡선의 미학 The Aesthetics of Curves》전 (1.14~2.14) 전시전경 (사진 함혜리)

출처 : 컬처램프(https://www.culturelamp.kr)  
2026년 1월 14일 ~ 2월 14일, 페이토 갤러리 PEYTO GALLERY (서울시 중구 동호로 220, 4층)


브라질 건축가 오스카 니에메예르(Oscar Niemeyer, 1907~2012)는 직선의 완고함 대신 자연과 인체에서 발견되는 ‘자유로운 곡선’에 투영된 생명력에 찬사를 보냈다. 그에게 곡선은 단순한 형태적 선택이 아니라 생동하는 우주와 삶의 박동을 시각화 하는 본질적인 언어로 바라봤다. 
로코코 시대 영국의 화가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는 S자형 곡선을 ‘미의 선(Line of Beauty)’이라 칭하며 이것이 관람자의 시선을 활기찬 추적으로 이끄는 생명력의 원천이라 봤다. 직선이 명료한 목적지와 효율을 상징한다면, 곡선은 시작과 끝의 경계를 유연하게 허물며 그 사이의 과정과 움직임, 그리고 보이지 않는 감정의 흐름을 화면 위로 소환한다.  미술사 전반을 관통하며 자연성과 역동성의 핵심 조형 요소로 기증해 온 곡선은 현대 미술에 이르러 단순한 형태적 미감을 넘어 작가의 신체성, 물질의 깊이, 그리고 시대적 사유를 담아내는 다층적인 언어로 재해석 되고 있다.
곡선이 지닌 조형적 가능성과 그 이면에 숨겨진 미학적 가치를 탐색 하는 김민석, 이가진, 하태임 작가의 작업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 《곡선의 미학 The Aesthetics of Curves》(1.14~2.14)가 페이토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해 온 세 작가의 작업을 통해 곡선이 지닌 조형적 가능성과 그 이면에 숨겨진 미학적 가치를 탐색한다.

'90년대생 블루칩 작가'로 꼽히는 김민석(b.1996)은 독학으로 자기만의 화풍을 개척했다. 디지털 툴의 조형 원리를 아날로그적 붓질로 번역하여 덩어리에 매끄러운 그라데이션으로 ‘실존의 무게’를 담은 입체적 형상을 구축한다. 픽셀로 이루어진 가상의 볼륨감을 수만 번의 덧칠을 통한 물리적 양감으로 치환하는 작업 과정은 본질이 부재한 시대를 향한 작가의 응답이다. 화면 속 사물들이 지닌 올록볼록한 곡선은 시각을 넘어 손끝에 잡힐 듯한 촉각적 실재감을 부여한다. 현대 사회의 디지털 환경이 인간의 감각을 어떻게 단순화하고 파편화하는지 주목하여 작업을 시작한 김민석은 초기에는 벨라스케스나 고야 같은 거장의 화풍을 독학으로 연구하여 페르난도 보테로를 연상케 하는 풍만한 양감을 탐구했다. 곧 단순한 재현을 넘어서 자신만이 독창적인 시각언어로 발전시킨 김민석은 마티스의 〈Dance〉나 반고흐의 정물화 등 클래식한 명화의 도상을 차용하되 이를 그래픽 툴의 3D 브러시 툴과 같은 디지털 논리로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치는 작업을 보여준다. 과거 사물의 본질을 중시하던 고전적 이미지와 표면적 경험만 남은 현대적 감각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이자 김민석만의 ‘디지털-아날로그 하이브리드’ 회화로 진화하는 토대가 되었다.

김민석 작업의 핵심은 덩어리와 매끄러운 그라데이션에 있다. 언뜻 보면 정교한 디지털 그래픽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크릴 물감을 수차례 덧바르고 건조하는 지극히 노동집약적인 아날로그적인 회화 과정을 통해 작업을 완성한다. 직접 조색한 물감을 여러 레이어로 겹쳐 쌓아 올리고 평면의 캔버스 위에 실재하는 듯한 입체적인 부피감을 부여한다. 화면 속 인물과 사물, 배경은 올록볼록한 덩어리의 형태로 단순화되어 존재감을 드러내고, 실체 없는 픽셀 데이터가 지배하는 현시대에서 회화가 가질 수 있는 물리적 실재감과 물질의 힘을 증명한다.

이가진(b.1985)은 전통 청자의 시각언어를 전복시켜 현대인의 감각과 관계를 담아내는 독창적인 조형언어를 구축한 작가다.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작업을 통해 도자의 새로운 서정적 경험을 보여준다. 초기에는 도자의 전통적 상징인 호의 구조안에 청자특유의 비색을 담았으나 점차 그릇이라는 기능적 범주에서 벗어나기를 시도해 나갔다. 전시에 소개된 'Dewdrop'시리즈에서는 담는 기능을 수행하는 도자의 내부를 비우고 대신 표면에 청자 유약 특유의 투명한 부피감을 채워 넣어 가마 안에서 불과 시간이 빚어내는 유려한 곡면을 통해 팽팽한 긴장감과 매끄러운 생명력을 동시에 담아낸다.

'Fluidity' 시리즈는 유약을 물감처럼, 도자 흙을 캔바스처럼 다루며 도자공예를 회화의 영역으로 확장했다. 백자 도판에 산화철로 된 청자의 유약을 두껍게 쌓아 올린 뒤 가마 속에서 구워지며 흙과 유약이 반응해 만들어 내는 우연적인 흘러내림의 곡선은 물흐르듯 자연스럽다. 서울대학교에서 도자공예를 전공하고 석사학위를 취득한 이가진은 파엔자 국제도자공모전 입선, 국제도자비엔날레 수상 등을 통해 국제적 역량을 인정받고 있다.

하태임(b.1973)은 신체의 궤적이 그려낸 유연한 곡선과 그 속에 겹겹이 쌓인 맑은 색채의 층위를 통해 조형적 리듬감을 넘어 인간의 감정과 기억이 흐르는 ‘곡선의 미학’을 보여준다. 그의 곡선은 반복되는 행위가 캔버스 위에 남긴 ‘유동하는 호흡’이다. 신체의 회전 반경을 따라 그어 내려간 색씨들을 겹겹이 쌓으면서 낱낱의 색채가 지닌 고유한 기억을 화면 위로 소환한다. 수많은 결이 중첩되어 완성된 곡선의 선율은 시각적 리듬을 넘어 언어 너머의 세계와 조우하게 하는 통로가 된다. 정교한 질서 속에 피어난 곡선은 정서적 해방감과 명상을 동시에 선사한다.

1990년대 프랑스 유학 시절 문자와 기호를 화면에 나열하며 소통의 불가능성과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탐구하는 작업에 몰두했던 하태임은 2000년대에 들어서 언어의 구체적인 지시성을 없애는 대신 문자가 추상적인 곡선의 형태로 변모하면서 하태임의 대표적 조형 언어인 ‘컬러밴드(Color Band)’가 탄생했다. 하태임의 작업은 ‘통로(Un Passage)’라는 일관된 주재 아래 수없이 반복되고 중첩되는 색 띠의 향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투명도가 높은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수십 번 붓질을 쌓아 올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색의 투명성과 깊이를 캔버스에 담는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컬러 밴드들은 화면 위에서 서로 교차하고 색이 겹쳐지며 시각적인 리듬감과 음악적 선율을 만들어낸다.

컬러 밴드는 단순한 색채의 배치를 넘어 작가의 신체적 움직임이 축적된 시간의 기록이자 감정의 층위이다. 맑고 경쾌한 색색의 띠는 지워짐과 동시에 생성되는 과정을 반복하며 시각적 곡선을 공감각적인 공간으로 치환한다. 오직 색과 면, 선의 조화로만 구성된 하태임의 회화는 현대인들에게 복잡한 언어 너머에 존재하는 순수한 미적 체험의 순간을 선사한다.
프랑스 파리 국립 미술학교(ENSBA)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에서 미술학 박사를 취득한 하태임은 1995년 개인전을 시작하여 서울, 파리, 베이징, 독일 등 국내외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고. 200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하는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수차례 개인전을 개최하며 독보적 입지를 다져왔다. 1999년 모나코 국제 현대 회화전에서 ‘모나코 왕국’ 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가구, 와인, 향수 등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회화의 영역을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다.

《곡선의 미학 The Aesthetics of Curves》 展은 김민석의 압도적인 볼륨, 이가진의 청아한 물질성, 하태임의 경쾌한 리듬이 ‘곡선’이라는 공통의 교차점에서 만나 서로의 예술적 세계관을 확장한다. 전시는 2월 14일까지. ▣


JANUARY 1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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