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희는 자연과 깊은 교감을 통해 내면의 감성을 화면에 담아내는 작가입니다.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미국 뉴욕 Pratt Institute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이력을 베이스로 동서양의 미감을 융합한 회화 세계를 구축해 왔습니다.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 놓인 작업은 살며시 번지는 색감 속에 담긴 감정과 사유를 통해 몽환적이고도 절제된 느낌을 줍니다.
초기 작업은 풍경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꽃잎, 하늘, 땅을 때론 형상을 띄기도 하고 때론 추상적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2015년 전후로 꽃잎이 화면 앞에 부유하듯 흩날리며 점차 원근법이 해체되고 자유로운 공간감과 감각의 흐름이 작품에 표현되었습니다. 이후 점, 선, 기본 도형(원형, 사각형 등)들이 느슨한 질서 속에 배치되며 자연과 감정의 찰나를 포착하는 최근 작업에서 추상성이 한층 강화되었습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미묘한 긴장은 화면 위에서 조용히 진동하며 관람자로 하여금 기억과 감정의 흔적을 더듬게 만듭니다. 스케치 없는 즉흥적인 화면 구성은 감성에 따른 반응이며 나아가 작가의 일상에서 비롯된 감정의 파동이자 기억의 잔상으로 사소한 찰나의 감각에 기반한 것 들에서 시작합니다. 단순한 자연의 묘사에서 머무르지 않고 자연을 매개로 한 내면의 탐색과 관계의 감정을 끌어올리는 작업에서 주로 표현되는 연꽃, 들꽃, 잎 등은 단지 식물의 형상이 아니라 생명력, 자기 정화, 정서적 순환을 상징하는 존재로서 작품의 심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와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사유를 이진희는 '손'과 '촉각'으로 느끼고 표현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녹색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활용한 여름날의 푸르른 감각을 담은 작품을 선보입니다. (〈산책〉 시리즈) 이진희의 기존 표현법인 손가락과 손바닥을 이용한 작업에 천과 스펀지를 활용해 조금 더 섬세한 터치감이 돋보이는 작업을 통해 화면의 조화로움을 더욱 깊이 있게 구현했습니다. (〈달〉, 〈첨벙〉, 〈스스로 피다〉) "한 글자 한 글자 시를 짓듯이 좋은 그림을 그려보자"라는 다짐처럼 예술을 일상의 연장선에서 성찰하고, 회화를 통해 고정되지 않는 감정과 감각, 삶의 불완전성을 아름다움으로 환원시키고자 합니다.
이진희의 회화는 단지 풍경이거나 추상으로 정의할 수 없습니다. 일상의 감정, 철학과 삶이 겹친 시간의 층위이자 정지된 듯 유동하는 '찰나의 풍경'으로 자연과 인간, 감성과 이성,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자신만의 회화 언어를 통해 현재의 삶에서 고정화되지 않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